제목 | 20240311-바우길3구간어명을받은 소나무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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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
등록일 | 2024년 03월 25일 (16:40) | 조회수 | 조회수 : 3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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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9일 애지람에서 어명을 받은 바우길은 제3코스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이다 보현사입구에 다다르니 멀리서 보이던 설산이 고고한 자태를 훤히 드러낸다. "그래, 오늘은 너랑 한번 놀아보자~" 호기롭게 발걸음을 뗀다. 완성씨도 걷는 게 자신있다고 한다.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익히 유명세가 있는 오르막이라 숨을 고르며 올랐다. 앞서 간 사람들이 밟아 놓은 길이 있어 아이젠 없이도 걷기가 수월했고, 한줄로 이어진 산행자들의 발걸음에는 힘이 있었다. 한참 숨이 차도록 오르니 뒤에서 재잘대던 산행자들도 힘이 드는지 가쁜 숨소리와 눈을 밟는 발자국 소리뿐이다. 완성씨는 뒤처짐 없이 오르막을 잘 올라갔다. 땀이 비오 듯 했다. 사방이 눈밭이라 쉴 곳이 없었다. 행열이 멈추면 그냥 서서 쉬며 숨을 돌렸다. 잠시 쉬는 동안 어지럽기도 하고 구토가 올라오기도 했다. 겨울동안 몸 관리를 하지 않은 자신에 괜한 자책을 했다. 다시 산행이다. 오르막부터 쌓였던 눈은 점점 깊어져 갔다. 앞사람이 다져놓은 곳을 밟지 않으면 갑자기 발이 푹 빠진다. 스패치와 아이젠으로 무장된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발을 헛디디면 젖은 눈은 종아리까지 다리를 붙잡는다. 평지보다 더 높게 다리를 들고 발을 내딛어야 한다. 한걸음 한걸음 앞사람의 발자국에 집중하고 간격을 유지하며 따라가야 한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발은 흠뻑 젖었다. 스패츠와 등산화 사이로 들어온 눈이 녹아 발을 적시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오르막은 어느새 능선을 드러낸다. 파랗게 하늘이 맞닿았다. 이제 곧 어명정이다. 2007년 경복궁의 기둥이 될 크고 잘생긴 소나무를 찾아서 온 이곳은, 금강소나무가 곧고 크게 자랄 수 있을 만큼 해가 잘 들고 물이 잘 빠질 수 있는 언덕위의 평평한 명당이다. 또 주위에 볕을 가리고 영양분을 빼앗을 경쟁소나무도 없는 소나무계의 금수저 땅이라고 할 만하다. 어명정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산에서 먹는 음식이 꿀맛이 아닌게 있을까? 완성씨는 김밥과 컵라면과 간식을 게눈 감추듯 없앤다. 오르막에서 흘린 땀은 점심을 먹는 사이 칼바람을 고스라니 맞는다. 다른 일행들도 자켓을 벗었다, 입었다 하기를 반복한다. 모두 고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끼니를 채우고 다시 술잔바위로 오른다. 술잔바위에 오르면 백두대간이 보인단다. 오늘처럼 맑은 날은 파란 하늘에 눈덮힌 백두대간의 능선이 장관일테니 기대로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얼마나 올랐을까.. 아무도 밟은 적 없는 눈속에 길을 만들며 가던 선두는 멈춰선다. 도저히 갈 수 없단다. 길이 보이지 않고 눈은 더 깊어 불가피한 철수. 다시 어명정으로 후퇴!! 왔던 행렬에서 그대로 뒤를 돌아 내려가야 한다. 오늘의 산행자 어느 누구도 불평없이 구간지기의 요청에 따라 질서있게 내려간다. 어명정에서 임도삼거리까지 가는 길은 오르막길과 설질이 다르다. 양지에 있는 눈은 백설기를 짓기 위해 채로 곱게 내린 쌀가루같이 포르르 부서진다. 모퉁이를 돌아보니 후쿠시마오염수에 닿지 않은 꽃소금처럼 눈의 알갱이는 맑다. 응달의 눈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서인지 밟아도 발이 빠지지 않고 단단하다. 어느 언덕의 눈은 적당히 수분을 머금고 있어 견고하나, 아이젠으로 찍고 가지 않으면 넘어지기 십상이다. 어느 길에는 올겨울의 모든 눈의 백화점처럼 1미터는 족히 넘게 쌓여 있다. 앞사람이 다져준 길을 밟고 가는데도 갑자기 종아리까지 발이 빠진다. 부서지는 눈은 부서져서 넘어지고, 젖은 눈은 미끄러워 넘어지고, 발이 빠지면 헛디디어 넘어지고, 넘어져도 사방은 흔적도 남지 않는 하얀 눈이다. 그렇게 눈과의 사투를 벌였다. 농담으로 피로를 이겨보던 산행자들의 소리도 어느 순간에는 정적이 온다. 유격! 유격!을 외치는 사내들의 소리와 외마디 곡소리가 들린다. 완성씨도 눈밭에 미끄러져도 눈을 짚고 또 일어난다. 자주 미끄러지면 발목과 무릎에 부담이 갈 수 있으므로 정신을 차리고 앞사람이 밟아놓은 자리를 꼭 따라 밟도록 주의한다. 한참을 내려왔다. 이제 종착지 왕릉마을까지는 2.3km가 남았는데 선두가 가다가 또 멈춘다. 이길로는 못간단다. 다시 정비하고 마지막 힘을 내본다. "눈아!! 덤벼봐라. 내 올여름에 눈꽃빙수 먹나봐라!!" 완성씨에게 어떠냐고 물어보니 “눈이 많아서 힘들어요. 그래도 재미있어요”라고 한다. 또 다시 이어진 눈과의 사투!!! 10km가 넘는 길을 가는 동안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추위와 배고픔에 겨울을 보내야 했을 멧돼지와 산토끼는 어디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까? 대관령에는 참새와 꾀꼬리가 많다던데 새소리 하나 없고 눈과 소나무와 햇빛과 파란 하늘뿐이다. 이곳에서 잔혹한 겨울눈은 연약한 소나무를 부러뜨리고 휘어버려 시체로 만들어 버렸다. 혹독한 눈앞에 소나무와 완성씨와 나, 이길의 사람들, 어느것 하나 나약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자연이 아닌 것이 있을까? 멀리서 개소리가 들린다. 마을이라는 증거다. 산행자들 모두 개소리를 반기며 들뜬다. 드디어 이 길의 끝이 온다. 이 길의 끝은 봄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 너는 온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봄-이성부 글.사진-정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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